미국 고교 재학 시절, 친구들이 한국에 놀러가면 주로 어딜 가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내가 태어난 원주,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용인시, 아버지의 고향 대구, 자주 놀러갔던 서울 등이 떠올랐지만, 해외 방문객 입장에서는 어딜 놀러가면 좋을지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다. 교통과 시간 투자 대비 원하는 ‘재미’를 얻을 수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 뻔한 서울 말고 다른 장소를 추천해주고 싶었지만 떠오르지 않아 또 다시 서울을 추천해주었다.
서울은 그만큼 문화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대한민국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장소이다. 그렇기에 나도 대학 입학하기 전 그 서울을 느껴보고 싶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균관대학교 이과 학생들이 그렇듯이 ‘수원납치’를 당했다. 문과 캠퍼스의 위치는 서울 종로구이나 나를 포함한 이과 캠퍼스의 위치는 수원 율천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서울에 함 살아보고자 생각을 했다. 이제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게 된 날들의 기록을 남길까 한다.
고시원은 아시안 테이블에서 골목으로 쭉 올라가면 나오는 ‘심쿵 하우스’다. 좀 더 시설이 좋은 고시원은 가격이 5만원 정도 더 비싸거나 빈 방이 없는 관계로 좀 낙후된 고시원을 골랐다.
입주 1일 차
고시원에 입주하기 전, 돈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서 공용 부엌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었다. 최대한 부엌에서 해 먹고 도서관에 갈 때 도시락을 싸면 서울 물가를 어느정도 방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입주 전에 고시원 주인이 공용 부엌에 라면과 밥이 제공된다고 하니, 생각보다 지출이 많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입주하고 나니 공용 부엌 상태가 너무 처참했다. 인덕션, 싱크데는 음식물 찌꺼기가 묻어있었고, 상한 식용류, 식초, 간장 등이 당연하다는 듯이 부엌 한 구석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밥솥은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워 마치 5년은 청소 안 한 것 처럼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공되는 라면이 김치 라면이었다. 윽 맛없는 걸 가져다 놓다니.
고시원 내부는 10/20대 남성 냄새로 가득했다. 더 자세히 말하면 불쾌할거 같아서 여기까지 말하겠다. 아마 대부분의 남성은 어떤 냄새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침대 및 가구는 낡고 허름한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쓸만해 보였다. 알콜로 열심히 닦아내면 금방 깨끗해 질 것 같았다. 제일 걱정되었던 화장실은 90년대 나비 & 단풍 데코레이션이 좀 거슬렸지만 나름 깨끗해보였다. 세월의 흔적은 어쩔 수 없으나 중요했던 수압과 환기가 준수하였다. 욕실세정재로 청소하면 편하게 사용할 수 있을거 같았다. 짐은 잠시 밖에 두고 다이소에서 청소 도구를 구매해 방 청소를 진행했다.
첫 날 밤, 자려고 마음을 먹으니 신경쓰지 않았던 한기가 느껴졌다. 긴바지, 양말, 깔깔이까지 입고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땐 몰랐는데, 이 고시원 … 난방이 안된다. 얇은 벽을 넘고 들어온 한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고, 자려고 덮었던 이불의 밖과 안은 피부로 느꼈을 때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온도 차이가 미미했다. 이런, 혹한기 훈련 때 보다 춥다. 화천에서 군생활도 했고 학창시절 대부분을 미시간에서 보냈기에 나름 추위에 단련이 되어있다고 자부했는데, 이대로 잠들면 정말 아무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위기의식을 느낀 나는 우선 화장실 따듯한 물을 틀었다. 온수는 정상적으로 나오고 수도세 부담이 없으니, 오늘 하루 잠들 동안에는 이걸로 온도를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증기가 금세 방 안을 채웠으나, 생각만큼 따듯해지지는 않았다.


차라리 밤을 새버릴까 싶었지만, 해가 떠도 잘만큼 충분히 따듯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지금 어떻게든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문득 양말과 같이 챙긴 내복이 생각났고, 그대로 옷장을 열어 내복 포함 얇은 옷을 전부 꺼내 입었다. 양말도 두 겹으로. 얼굴은 가릴 것이 없어 아직 추웠지만, 몸은 보온효과로 금세 따듯해져 잠들만 했다. 침대에 누워도 약간의 긴장감이 남아있어 일찍 잠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죽지않고 잘 아침에 일어났다. 빠른 시일 내 온풍기라도 하나 장만해야겠다.
입주 1달 차
고시원 생활도 이제 매우 편하다. 온풍기도 하나 장만했고 너무 익숙해져서 기숙사는 생각도 나지 않는다. 공용 부엌은 더럽지만, 햇반과 다이소 후라이펜이 있다면 간단한 아침 & 점심 도시락은 충분히 요리 가능하다. 덕분에 돈도 많이 아꼈고, 기숙사 때 보다 더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다.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 같아서 좋다. 하지만 공간은 기숙사보다 작기에, 기타 이펙터까지는 가져오지 못했다. 기타는 가져왔고 너무 늦은 저녁만 아니라면 연습까지 할 만 하다.


이제 혜화 고시원 생활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개인 프로젝트 하나가 아직까지 진행중인데, 개학 전 까지 끝내려면 좀 서둘러야 겠다. 이상 여태까지가 혜화 [고시원 살아보기]에 대한 기록이다.
2 responses
대박짱신기하네요이거
카아아아아아아악 카악 카아아아악